자율주행 시대의 사고조사원 시리즈 박태훈 지음, 잡지 《미스테리아》 수록 연작단편, 소설
격월간 잡지 《미스테리아》에 실린 박태훈의 〈자율주행 시대의 사고조사원〉과 〈자율주행 시대의 역학조사〉는 사람이 운전할 필요가 없어진 시대, 젊은이의 80%가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율주행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승진을 기대하고 이사실에 들어선 사고조사원 박 과장과 그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AI 보험총괄이사의 숨막히는 티키타카 설전을 담은 <자율주행 시대의 사고조사원>과 팬데믹 시대에 택시를 탄 수상한 승객의 비밀을 좇는 사고조사과 에이스 김 과장과 보험이사의 콜라보 추리 <자율주행 시대의 역학조사>를 영상화 IP로 추천합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사고조사원을 상대로, 혹은 파트너로 삼아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AI 보험총괄이사의 매력은 어디까지일지 작품 속에서 확인하세요.
🔔🔔🔔너무 멀지 않은 근미래와 이제는 친숙한 AI 기술, 팬데믹까지, 현실에 기반한 설정에 설득력 있고 손에 땀을 쥐는 전개를 찾는 분들에게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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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시대의 사고조사원>은 제3회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단편부문 수상작으로, 2020년 1월 출간된 《미스테리아》 28호에, <자율주행 시대의 역학조사>는 2020년 7월 출간된 《미스테리아》 31호에 수록되었습니다. 연작소설로 볼 수 있는 이 두 편에서 래피드 오토모빌의 AI 이사가 ‘안락의자 탐정’으로 활약합니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되어 있어, 장편으로 확장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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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박 과장님.”
창밖을 보고 있던 박 과장은 깜짝 놀랐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정면에 있는 책상 위 스피커로 눈이 갔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보험총괄이사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륙십 대 남성 목소리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사님.” 박 과장이 버벅거리며 대답했다. (......)
그나저나 대화 상대가 보이지 않는 것이 이렇게 곤혹스러운지 몰랐다. 상대는 가정용 인공지능 스피커가 아닌, 박 과장의 인사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임원이다. 음악을 틀어달라거나, 검색을 부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당연히 공손한 존댓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 《미스테리아》 29호, 230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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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은 지난 일 년간 사고조사원으로 일하면서 단 한 번도 3A의 판단에 대한 반대 의견이나 코멘트를 낸 적이 없었어요. 3A가 판단한 대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업무를 처리하셨죠.”
박 과장은 맥이 빠졌다. 그게 이유라고? 3A와 의견이 불일치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그게 뭐가 잘못됐나요?”
“저는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이유는 차차 말씀드리기로 하고……. 다른 조사원과 비교를 해보면 박 과장님 업무 처리는 통계적으로 극단값에 가까워요. 데이터를 살펴보면 과장님은 지난 일 년간 굉장히 수동적으로 업무를 하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사고에 대한 어떠한 의견 제시도 없이 인공지능이 판독한 그대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종결 처리하셨단 말이죠.”
“지금 그러니까…….” 박 과장이 발끈했다. “인공지능이 판단한대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저한테 뭐라고 하는 겁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박 과장의 대답에서 감정이 묻어났다.
- 《미스테리아》 29호, 246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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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과장은 이사가 이야기하는 동안 아무런 대답도,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게 이사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증거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사고는 잘 수습되었고 모두 행복해졌습니다. 강 의원은 만족했고, 이 보좌관은 영상을 손에 넣었고, 박 과장님은 승진을 바라보게 됐으니까요. 하지만 과장님이 바란 건 승진이 아니었을 거예요. 어차피 사고조사원이란 직업에 흥미도 없는 것 같고요. 승진 때문에 벌이기엔 너무 위험 부담이 큰일입니다. 이 보좌관이 약속한 게 돈이었나요?”
박 과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소파 테이블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창밖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다. 눈발도 조금씩 날리고 있다.
“아까 ‘저는 야경을 봐도 아무 느낌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말은 취소해야겠습니다. 오늘 야경은 너무 쓸쓸해 보이니까 말이죠. 저도 술을 마실 수 있다면 한잔하고 싶은 기분입니다. 사건이 해결되면 기분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말이죠……. 제가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진 행복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불행해져버렸네요.”
“이게…….” 박 과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람 사는 세상인 거죠. 이사님은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 《미스테리아》 29호, 266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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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바이러스는 재작년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지만, 한국에서는 오직 서른일곱 명만이 양성반응을 보였고 다행히 사망자 한 명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감염병대응본부가 대규모 테스트를 실시하고, 감염자 동선을 철저하게 파악해서 전염병 확산을 재빠르게 막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다시 일본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오더니, 한국에서도 순식간에 환자가 아홉 명으로 늘어났다. 사람들은 하나둘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이른바 세컨드 웨이브가 시작된 것이다.
“저희 래피드 택시에 탔던 감염자는 일본인 관광객인데, 오늘 오전 양성반응이 나와서 감대본에서 협조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팬데믹이 주기적으로 발생하자, 질병관리청에서는 감염병 관련 업무를 분리해서 감염병대응본부을 신설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줄여서 감대본이라고 불렀다.
김 과장이 태블릿PC를 조작해 관련 자료를 이사에게 전송했다.
“BS-221B호 차량에 탑승했던 사람의 명단을 달라는 거군요.”
이사는 공문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봤다.
“지난주 금요일이면…….”
이사가 날짜를 확인했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잖습니까?” - 《미스테리아》 31호, 290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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