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된 아파트에 분수대를 만들기 위해 공사가 진행되고, 동백나무가 있는 화단에서 묻힌 지 오래된 여자 아이의 유골이 발견됩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자기 대신 유괴되어 살해당한 뒤 미제 사건 전담 형사가 된 은혜주, 어린 시절 의문의 실종 사건으로 동생을 잃고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던 이영우, 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이십 년간 복역 후 출소를 앞둔 지능범 조남국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위태롭고 지난한 시간을 견뎌온 그들이 이십 년 전 일곱 살의 나이로 실종되었던 이영채의 시신이 발견되며 한자리에서 만나게 됩니다.
키, 몸집, 머리 길이까지 쌍둥이처럼 닮았던 부잣집 딸 혜주와 그 단짝 보미. 부잣집 딸을 유괴하려던 지능범 조남국은 20년 전 자신이 진짜 은혜주라고 주장하는 맹랑한 이 두 소녀과의 게임에서 패합니다. 혜주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지만, 보미는 실종됩니다. 형사가 되어 교도소로 찾아온 혜주에게 조남국은 말합니다. "그날 내가 너를 유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말에 혜주는 그날의 게임을 다시 시작합니다. "내 이름은 은혜주야. 그런데 난 김보미야."
👍 범인과 두뇌게임을 벌이는 소녀들과, 20년 후 이제는 홀로 생존해 그를 다시 상대하는 여형사의 이야기 《숲의 아이들》, 선명한 대결구도의 추리스릴러를 찾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단언은 확실한 미래의 선언이자 희망에 대한 자신감이다. 문득 혜주는 저 단언을 밟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는다. 어쩌면 지금이 감옥에 갇힌 그에게 답을 들을 마지막 기회였다.
또 다시 묻는다.
“어디에 있지?”
“누구 말이야?”
“……”
“잘 있을 거야. 아니, 잘 못 있을까……”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조남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갑자기 혜주 쪽으로 불쑥 다가와 뚫어질 듯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에게는 혜주의 얼굴이 그때도, 지금도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조남국이 나직이 속삭였다.
“그날 내가 너를 유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조남국의 질문은 혜주가 지난 십오 년 동안 해온 질문이었다.
그날 내가 유괴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p.14
“무슨 일로 오셨소?”
“XX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신 적 있으시죠?”
혜주는 자신을 소개한 후 화단의 동백나무에 대해 물었다.
“아. 그거 그때 나랑 같이 경비원 하던 이씨가 심었다던데.
“이씨라면….”
“이씨는 나보다 먼저 그 일을 시작했는데 오래했지. 그 사람이 심은 거라고 누가 그러던데. 진짜인지는 모르지 뭐. 그런데 이씨가 정말 그 동백나무를 잘 보살피긴 했지. (…)”
“그분 이름은 아시나요?”
“이름이 가물가물하네. 그 양반 나중에 그 아파트에서 살았어. 무슨 돈이 있었는지. 아들이 서울대 나왔다 그러던데(…).”
“서울대요?”
“응. 법대인가. 의대인가. 최고로 점수 높은 데라 사람들이 그러는 거 듣긴 했어(…)”
“혹시 이름이 이, 정, 규인가요? (…) 이 사진 좀 봐주세요.”
“이 양반인 것도 같은데, 왜? 무슨 일이야?”
우연이 아니다. 우연일 수가 없다.
그는 딸이 묻힌 곳을 알고 있었다. 그가 묻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무슨 생각으로 딸이 묻힌 곳을 지켰을까.- p.220
은혜주라는 아이를 유괴했다. 하지만 은혜주의 아버지는 그를 모욕하고 아이의 몸값을 거절했다. 그는 아이 아버지가 왜 그렇게 나오는지 궁금했다. 돈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받았다. 아이가 그에게 물었다. 정말 혜주를 데리고 있냐고. 아이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
그렇게 그 아이가 그에게 왔다. 어둠 속에서 나온 아이는 놀랍도록 은혜주 같았다.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그에게는 더 그랬을 것이다.
쌍둥이처럼 닮은 소녀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진짜 게임이 시작되었다.
소녀가 말했다. 이제 자신이 왔으니 다른 소녀는 보내달라고. 그러자 다른 소녀가 말했다. 저 아이는 은혜주가 아니니 놓아주라고.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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