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도재인은 아마추어 오컬트 탐정으로 가끔은 매체로부터 오컬트 관련 취재를 의뢰받아 글을 쓰기도 합니다. 백화점 문화센터 풍수 수업이나 동네 필라테스 수업에서 알게 된 지인의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해결해주며 점차 이름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 책에 수록된 네 연작 단편은 도재인이 오컬트 탐정으로 활약하는 지인들의 에피소드로, 전생, 방망이점 같은 한국동양적 오컬트 소재부터, 거울점, 저주인형 보편적인 오컬트 소재까지 망라합니다. 이 네 편의 이야기는 재인이 살고 있는 빌라 1층의 코인세탁소에서 시작되는데,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이 코인세탁소가 새로운 삶을 찾는 이들이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통로였음이 밝혀집니다. 영상화 판권 계약이 된 바 있는 전작 『오컬트한 나의 일상: 봄, 여름 편』 『오컬트한 나의 일상: 가을, 겨울 편』을 잇는 저자의 오컬트 시리즈로 전작 속 일부 등장인물이 이번 작품에도 등장해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들을 기발한 에피소드에 녹여넣은 작품으로, 추리 미스터리+오컬트가 적절히 결합된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일상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한국형 오컬트 탐정 도재인이 보여주는 추리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코인세탁소가 세계 간 이동통로라는 설정이 특히 매력적인 작품이라 추천합니다.
“지금 눈을 뜨면 안 돼. 한 명씩 주문을 외우고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뜨는 거야.”
안나의 말에 다시 재빨리 눈을 감는다. 등 뒤에서 휙 불어 오는 바람에 흩날린 머리카락이 뺨을 간질인다. 방 안에 잔뜩 세워놓은 거울들을 바람이 흔들고 간다. 이렇게 크게 들리는 심장 소리의 주인은 누구? 정란이? 아니 내 가슴속에서 나는 소리야? 안나가 다시 명령한다.
“이제 윤미가 주문을 외워.” “알았어.” 눈을 감아서 보이지 않지만 윤미가 씩씩하게 읊는 소리가 들린다. “나의 미래의 남편님, 저녁 식사하러 내게로 와주세요.”
- <거울 속의 남자> 중에서 p.226
나는 평생 그 누구와도 척지고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 지만 이 말을 함으로써 앞으로 권 교수는 나를 영원히 미워하게 될 것이다. 권 교수는 눈에 불을 담고 연희 선생님에게로 돌아섰다. 집을 온통 태울 것 같은 불이었다.
“연희, 네가 이 여자에게 시켰니? 너 그렇게 나를 미워했어? 네 남편 첫사랑이 나라서 앙심 품은 거야? 왜, 내가 장 감독을 죽이려 했다고 하지 그래?”
이제는 연희 선생님의 얼굴도 벌겋게 변했다. 김 피디가 주먹을 꽉 쥐었다.
“종열 씨가 말해봐. 몰래 만나려고 했던 건 내가 아니라 주은이잖아? 주은이 걔도 유치하다. 이렇게 성공한 애가 고작 그런 과거의 일을 원망해?”
권 교수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높였다. 이 변호사가 아내의 팔을 붙잡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 <구름 뒤 은빛 햇살을 찾아> 중에서 p.204
강령술과 삼척 방망이점
사람이 답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영령이 깃든 물건이 대답해줄 수 있다는 믿음은 세계 보편적이다. 이런 믿음을 이용한 기술을 영령이 내려온다는 뜻으로 강령술降靈術이라 부른다. 깃든 영혼이 죽은 자일 때는 혼을 부른다는 의미에서 초혼술이라 고 하고, 영어로는 죽은 자에게서 점괘를 얻는다는 의미의 네크 로맨시necromancy라고 할 수 있다. (......) 한국에도 고유하게 강령을 이용한 전통 놀이가 있다. 강원도 강릉과 삼척 일대에서 방망이점, 충남 일대에서는 꼬댁각시라고 부르는 놀이로, 서사 민요와 결합된다. 베 짜기 등 여성들이 단체로 하는 작업 중에 불리기에 일종의 노동요에 속한다. 부녀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이 놀이는 물에 빠져 죽은 영혼이 소위 신대 역할을 하는 방망이나 막대기에 내린다고 한다. 부녀자들은 한 해의 운수를 점치기도 하고 잃어버린 물건의 행방을 묻기도 한다. 유령에게 미지의 해답을 듣고 싶다는 마음, 이런 인간의 열망이 모여 방망이가 움직인다. 방망이에 내린 영령은 꼬댁각시 민요에서 나오듯이 삶의 욕망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가련한 여성의 영혼이다.
- <도재인의 ‘오컬트와 마술적 사고’> 중에서 p.220
“러시아 타로술사를 만났던 밤, 저는 건물 쪽 문으로 들어왔고, 바깥으로 이어지는 문은 분명히 잠겨 있었어요. 그렇다면 사람이 들어올 입구라고는 없죠. 또, 그렇게 눈에 띄는 사람이 건물에 들어왔다간 CCTV 같은 데 걸리기가 십상일 거예요. 하지만 어떻게든 빨래방에 몰래 들어올 수 있다면, 추적자들의 눈을 피하기는 좋았을 거예요. 이 근처에 왔다가 갑자기 사라진 여자. 그리고 여기 들어와서는 세탁기에 미리 준비된 옷을 갈아입고, 건물 안쪽으로 연결된 문으로 나가, 계단을 통해 윤정 씨의 집으로 이동한 다음, 거기서는 다시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가죠.”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대형 세탁기로 향했다. 세탁기의 동그란 문은 거의 해치에 가까웠다.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건물 안에 있기엔 너무 대형 세탁기이고, 늘 고장이고.”
이 건물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안가 중 하나였다. 추격자를 피해서 도망치는 사람들이 중간에 들르는 장소. 빨래방은 그 비밀 지하 철도와 안가를 이어주는 일종 의 역이었다.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에필로그> 중에서 p.449
문학동네 IP개발팀 ip@munhak.com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210, (031)955-1915 수신거부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