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금융 컨설팅사 FWIS의 6년차 직장인 이로아는 한국 지사장 뤼카스 휘스먼이 쓸모를 다한 자신을 몰아내려 한다는 걸 눈치챕니다. 그간 초고연봉의 ‘글로벌 노예’로 살며 망가진 정신을 사내 상담의 양은영이 준 약으로 겨우 부여잡아 왔습니다만, 이 최첨단 정신병원에서 탈출해 진정한 자유인으로 거듭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돈이. 그렇게 그녀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주식 초단타 투자에 몰입합니다. 기민한 투자 감각으로 곧 100억원을 손에 쥐게 되고 드디어 고대하던 인생 역전을 이뤄낸 듯한 순간, 오히려 자신의 삶이 희미해졌다는 깊은 공허를 느낍니다. 퇴사 뒤 제주도로 호화로운 휴가를 떠난 그는 그곳에서 한 여자 아이의 죽음을 목도하고. 범죄의 냄새를 맡습니다.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나서면서, 이로아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긴 휴가가 시작이 됩니다.
주식 코인으로 일확천금을 손에 얻은 K-직장인, 이쁘고 잘 생긴 유학파 상류층 친구들과 아지트에서 여는 파티,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리조트에서 보내는 기한 없는 휴가, 몽롱하도록 아름다운 휴양지의 풍경... '한번쯤 내게도' 하며 꿈꾸었던 그러한 삶이 이 소설에는 종합선물세트처럼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진 음모와 범죄사건이 휴가지의 늘어진 텐션을 바짝 끌어올립니다. 바캉스와 범죄스릴러, 이보다 더 짜릿한 조합이 있을까요.
✅ 이런 분들께 특히 추천합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소재, 화려한 미장센을 원하는 영상 제작사분들에게 강추 드립니다.
조영민 팀장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이로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발리섬 남동쪽 누사두아 해변의 해질녘 하늘의 빛깔이었다. 네온 핑크와 오렌지, 레몬옐로와 일렉트릭 퍼플 빛으로 물든, 금빛 진주 가루가 흩뿌려진 듯 나른하게 빛나는 구름들이 휘핑크림처럼 뭉게뭉게 늘어선 완벽한 꿈의 하늘을 그녀는 정녕 목격했던가.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사장에 두 발을 파묻은 채 그녀가 바라본 것이 과연 진짜 석양이었을까. 꿈같던 무지갯빛 양떼 아니 구름떼는 실재했던 걸까. 아니면 독한 칵테일에 취한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이었을까. 터질 듯 부풀어오른 해가 오렌지빛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짙푸른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이, 거대한 거미줄 같은 그림자가 겹겹이 내려앉는 초현실적인 해변의 이미지가, 감미로운 독약 같은 쪽빛 파도가 믿을 수 없게도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 더욱 걸쭉해져가는 핏빛 노을 아래 영원한 듯 펼쳐진 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파도 소리, 반복되는 물결의 소음은 진정 환각적이었다. - p.9~10
—괜찮아요?
신해남이 도착했을 때 이로아는 건물 앞에 주저앉은 채, 양손에 고개를 푹 파묻고 있었다.
—괜찮아요?
신해남이 한번 더 물었고, 그제야 이로아가 얼굴에서 손을 떼고 손가락으로 문제의 건물을 가리켰다. 반쯤 열린 문 안으로 커다란 황금빛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불상이었다. 불상은 오랜 기간 방치된 듯 심하게 더러워져 있었다. 신해남은 몸을 좀더 안쪽으로 기울이는 동시에 시선을 위로 향했고, 그러자 고요하게 미소 짓고 있는 불상의 얼굴께에 드리워진 창백하고 조그마한 두 발이 눈에 들어왔다. 신해남의 얼굴이 경악으로 굳었다. 핑크빛 옷을 입은 어린 여자아이가 대들보에 동여매어진 밧줄에 목을 매단 채 죽어 있었다. 신해남은 기이한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마치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한입에 삼켜 목이 턱 막힌 듯한 소리였다. -p.100
- 실버 샌드 운영자금의 절반을 제주관광청이 대고 있어요. 절반은 시타 델 마레에서.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다 한패라고요. 그리고 패거리의 핵심이 양은영의 육촌인 양철수 국장이에요. 양철수가 뤼카스 휘스먼을 통해서 외국계 투자회사들의 지원을 이끌어냈다고 했어요. 결과는 보시다시피 대성공. 급작스럽게 열대화된 제주도를 한국의 발리로 변모시키는 데 성공했어요. 고급 리조트 라이프 스타일에 보헤미안의 정신을 결합하는 데 성공한 거예요. 근데 이게 시작이에요. 제주도에는 시타 델 마레보다 더 하이 콘셉트인 리조트들이 들어설 예정이에요.
- 난 이해가 안돼. 제주도가 잘 나가게 되는 거랑 범죄가 무슨 상관이야? 제주도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기 위해서 범죄 소굴이 되어야 된다는 설마 뭐 그런 얘기는 아니죠?
- 그게 맞아요.
- 제주도는 비싼 섬이에요. 그리고 앞으로 더- 비싸질거구요. 느껴지지 않아요? 어떻게 못 느껴? 사방에서 돈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 -p.284~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