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강원도 척주로 발령받아 내려온 지 2년째인 보건소 약무직 공무원인 송인화(30대 중반). 핵발전소 건립을 두고 주민들은 찬핵 반핵으로 갈려 싸우고, 사이비종교 약왕성도회 무리들은 진폐증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타깃으로 삼아 병을 낫게 해준다며 포교활동을 합니다.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은 전 연인 윤태진이 척주시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내려와 마주치는 상황에서, 특히 송인화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아버지의 죽음입니다. 18년 전, 척주의 향토기업 ‘동진 시멘트’ 임원이던 송인화의 아버지가 부두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사건을 자살 처리했고, 아버지의 죽음 후 척주를 떠났다 돌아온 송인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가 살해됐다고 믿습니다. 어느날 마을 노인이 독극물이 든 막걸리를 마시고 죽은 사건이 일어나고, 그의 주머니에서 송인화의 명함이 나오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탑니다. 약과 사이비종교에 이미 깊이 중독된 동네 주민들의 실태를 깨닫는 동시에, 아버지 죽음의 배후를 밝히려는 그녀의 목을 죄어오는 검은 마수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 굉장히 잘 짜인 흡입력 있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주변의 압박에도 아랑곳 않고 정의롭게 권력과 종교의 결탁관계와 비리를 파헤치는 사이다 전개가 있습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보건소 공익요원(약대생)과의 직장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심쿵설렘 로맨스가 있으며, 결국에는 18년 전 밝히지 못한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있습니다. 드라마, 영화 IP로 추천합니다 👍
이 소설의 큰 줄기인 시장 주민소환 사건은 2012년 강원도 S시의 실제 상황을 모티프로 했습니다. (책 말미 작가의 말 참고) 이야기를 더 상세히 보고 싶은 분께서는, 아래 시놉시스 링크를 눌러주세요. 이야기에 흥미가 생기시면 꼭 작품 전문을 일독해보시길 권합니다.
그때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하고도 정중하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척주에서 송인화의 집에 찾아올 사람은 주인노인 말고는 택배기사밖에 없었다.
"회관에서 나왔습니다."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관이라면 노인복지화관? 여성복지회관? 송인화는 업무 쪽을 먼저 떠올렸지만 그쪽에서 집까지 찾아올 이유는 없었다.
"몸이 아프시지요?"
회관에서 나왔다는 목소리가 그렇게 물었을 때 송인화는 주인 노인을 돌아봤다. 노인을 찾아온 사람이 층수를 혼동한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인 노인은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더니 자기 집인양 걸어가 현관문을 열었다. 검은 코트를 입은 여자 두 명이 문밖에 서 있었다. 칠흑 같은 머리를 귀 아래로 쪽쪄 내려 망핀으로 묶고 있었다.
"약왕보살님이 몸이 아픈 시민들을 위해 대서원을 세우셨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그렇게 말하면 여자가 송인화에게 리플릿을 내밀었다. 얼결에 리플릿을 받아들다가 송인화는 여자와 손가락이 스쳤다. 선득한 체온에 송인화는 몸을 조금 떨었다. - 21~22p
"파헤치지 않았으면 해."
한참 동안 운동장 풀숲을 바라보던 윤태진이 말했다. 무슨 말인가 싶어 송인화는 윤태진을 쳐다봤다.
"뭔가를 하나씩 알게 되다가 갑자기 퍼즐이 맞춰지더라도...... 덮어. 너한테 손 뻗는 것들에 반응하지 마. 너한테 꽂히는 반감들에 흔들리지도 마.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척주를 떠나라는 말 같네."
윤태진은 대답 대신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써먹을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거야."
"......"
"인화 니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한테 별일이 없어야 내가 척주라는 곳을 견딜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래."
송인화는 봉투를 열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 182p
"오병규 시장질 기껏해야 몇 년이야. 시멘트 그게 가면 얼마를 가겠어. 근데 우린 아니야. 세상이 멸망해도 약장사는 안 망한다고. 잘 알 거 아니야. 약방 갈 때 뛰어간다는 말이 왜 있는지. 그러니까 그만 좀 뻗대고 나한테 와. 안금자가 손아귀에 힘을 주며 송인화의 팔을 눌러왔다.
"아버지 생각 떄문에 오병규 면상 볼 때마다 힘들어? 그럼 내가 오병규 죽여줄 수도 있어."
"그 입 닥쳐!"
(...) 송인화는 일어나려고 팔을 짚는 안금자한테 걸어가 다리로 안금자의 등을 눌렀다. 그러고는 안금자가 목에 두르고 온 머플러를 풀었다. 안금자가 상체를 흔들며 머리로 송인화를 쳐대기 시작했다. 머플러는 풀어지려다가 다시 안금자의 목에 감기기를 반복했다. 송인화는 무게를 완전히 실어 안금자의 등을 최대한 압박했다. 안금자가 발악하듯 몸을 뒤쳤지만 힘은 송인화가 조금 더 셌다. 송인화는 안금자를 나무 아래로 잡아끌고는 머플러로 안금자를 나무 기둥에 묶었다. 송인화가 휴대폰을 빼앗으려고 점퍼 주머니를 뒤지자 안금자가 처음 들어본 욕을 쏟아냈다. 송인화는 안금자가 짚고 온 등산 지팡이와 안금자의 휴대폰을 골짜기 아래로 던져버렸다. - 350~351p